DREAM FOR EUDCATION
학교라는 이름의 꿈을 향하여
학교라는 이름의
꿈을 향하여
증평, 기록의 정원
1929년,
‘증평면 장학회’
1926년 출범한 ‘증평면 장학회’는
4년 동안 약 6천여 원의 돈을 모았습니다.

증평면에 부재한 초등 교육기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쓴 결과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학교 설립에 필요한 당국의 인가를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증평공보 설립 실현”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1926년 출범한 ‘증평면 장학회’는 4년 동안 약 6천여 원의 돈을 모았습니다. 증평면에 부재한 초등 교육기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쓴 결과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학교 설립에 필요한 당국의 인가를 얻을 수 있었고, 마침내 “증평공보 설립 실현”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증평공보 설립실현’이라는 기사가 1929년 9월 20일 중외일보에 실렸다. 이 기사에는 괴산군 증평면 장학회가 대정 15년(1926년)에 관민 유지의 발기로 창립하여, 공립보통학교 신설을 위한 기본금 적립 활동을 올해 12월까지 진행해 약 6천여 원을 모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장학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당국에 인가를 얻은 후 내년에 4월1일까지 개교하기로 결정한다.
1930년 4월 1일,
드디어 ‘증평공립보통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교사 완공일이 늦어져 면사무소에서 개교한 증평공립보통학교는
1학급 당 35명씩 2학급, 총 70명의 학생을 모집하였습니다.
이후 5년 동안 학급과 학년 연장을 논의했고,
총 6학년제로 학년 구성을 마쳤습니다.
드디어 ‘증평공립보통학교’가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교사 완공일이 늦어져 면사무소에서 개교한 증평공립보통학교는 1학급 당 35명씩 2학급, 총 70명의 학생을 모집하였습니다. 이후 5년 동안 학급과 학년 연장을 논의했고, 총 6학년제로 학년 구성을 마쳤습니다.
‘증평공립보통학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꿈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증평공립보통학교(現 증평초등학교) 학생들은
증평극장에서 연극을 올린 배우가 되었고,
미술수업에서는 증평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증평초등학교에서 창단된 야구부에서는
이상군, 민문식, 송진우 같은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꿈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증평공립보통학교(現 증평초등학교) 학생들은 증평극장에서 연극을 올린 배우가 되었고, 미술수업에서는 증평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증평초등학교에서 창단된 야구부에서는 이상군, 민문식, 송진우 같은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증평의 초등 교육기관이 설립된 이후에도,
교육을 향한 열정의 불씨는
증평 시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타올랐습니다.
그 중 맨 앞에서 횃불을 들었던 사람은
증평의 초등 교육기관이 설립된 이후에도, 교육을 향한 열정의 불씨는 증평 시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타올랐습니다. 그 중 맨 앞에서 횃불을 들었던 사람은
백순단 여사 그리고 이철우 님 같은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백순단 여사
백순단 여사는
빈손으로 청안역 앞에 셋방을 얻어 술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모은 돈을 백순단 여사는 교육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내놓았습니다.
빈손으로 청안역 앞에 셋방을 얻어 술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모은 돈을 백순단 여사는 교육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내놓았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기부는
‘증평공립보통학교’였습니다.
자신의 힘든 삶이 문맹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큰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자신의 힘든 삶이 문맹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큰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입니다.
두 번째 기부는
‘증평동신대농촌진흥회야학당’에게
전해졌습니다.
가난한 농촌 아이들을 위해 야학당 신설에 큰 힘을 나눠준 것입니다.

이는 충북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에게 큰 마음을 꺼내 준 백순단 여사의 이야기,
교육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신문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가난한 농촌 아이들을 위해 야학당 신설에 큰 힘을 나눠준 것입니다.

이는 충북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에게 큰 마음을 꺼내 준 백순단 여사의 이야기, 교육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신문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증평의 교육 발전을 위해 많은 기부를 실천한
백순단 여사에 대한 기사가 ‘조선중앙일보’(좌 1935.10.18.)
‘매일신보’(우 1935.10.30.)에 연이어 소개되었다.
증평의 교육 발전을 위해 많은 기부를 실천한 백순단 여사에 대한 기사가 ‘조선중앙일보’(위 1935.10.18.)와 ‘매일신보’(아래 1935.10.30.)에 연이어 소개되었다.
증평의 남하리에 살던 이철우 님은
가난을 물려받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게되었습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겨우 한자리 밭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남하리에 날아든 소식 하나를 듣게 됩니다.

증평면 제2소학교 기성회가 조직돼
남하리에 학교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전보였습니다.

이철우 님은 소학교 위치를 조사한다는 말에 기성회로 성큼 발걸음 하였고,
힘들게 마련한 그의 밭을 학교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기부하였습니다.
가난을 물려받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게되었습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겨우 한자리 밭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남하리에 날아든 소식 하나를 듣게 됩니다. 증평면 제2소학교 기성회가 조직돼 남하리에 학교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전보였습니다. 이철우 님은 소학교 위치를 조사한다는 말에 기성회로 성큼 발걸음 하였고, 힘들게 마련한 그의 밭을 학교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기부하였습니다.
이철우 님이 학교를 위해 자신의 밭을 기부했다는
1939년 4월 27일 자 ‘매일신보’ 기사이다.
당시 괴산군 증평면 제이소학교 기성회는
등면 남하리에 학교 부지를 정하고 있었다.
평소에 교육기관이 부족하여 입학하지 못한
아동들을 불쌍히 여겨왔던 이철우 님은
이 말을 듣고 기성회를 방문하여
본인이 농사 짓던 밭을 학교에 기부하였다.
아버지 때부터 가난한 머슴살이로 살며 모은 땅을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철우 님의 교육열과 봉사정신을 높이 칭송하였다.
이철우 님이 학교를 위해 자신의 밭을 기부했다는 1939년 4월 27일 자 ‘매일신보’ 기사이다. 당시 괴산군 증평면 제이소학교 기성회는 등면 남하리에 학교 부지를 정하고 있었다. 평소에 교육기관이 부족하여 입학하지 못한 아동들을 불쌍히 여겨왔던 이철우 님은 이 말을 듣고 기성회를 방문하여 본인이 농사 짓던 밭을 학교에 기부하였다. 아버지 때부터 가난한 머슴살이로 살며 모은 땅을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철우 님의 교육열과 봉사정신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육에 대한
증평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식과 문화의 보고인
도서관과 문학관, 기록관을
꾸준히 건립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도
모두 아이들을 사랑해 온
증평 주민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증평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식과 문화의 보고(寶庫)인 도서관과 문학관, 기록관을 꾸준히 건립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도 모두 아이들을 사랑해 온 증평 주민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은
증평 공동체가 함께 이룩한 성과입니다.
교육을 통해 증평은 더 큰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은 증평 공동체가 함께
이룩한 성과입니다. 교육을 통해
증평은 더 큰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